同居 / part. 3 耽溺

 


# 耽溺

   탐닉

 


위를 향해 곧게 뻗은 속눈썹은, 숱이 많고 길며, 또 새까맣다. 바람이 불면
날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길이라 오노는 살짝 후- 하고 그것을 불어보
았다. 싫은 듯 미간을 찌푸리는 마츠모토의 눈꺼풀이 살짝 떨린다. 그러나
절대로 일어나지는 않을 모양이다. 이내 낮은 소리이지만, 푸우- 푸우- 하
는 코골이까지 들려왔다. 하긴, 아까 그렇게나 술을 마시고 들어왔으니 피
곤할만도 하다.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확신이 들자 오노는 용기가 생겼다.

 

역시, 잘 생겼다.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그 자신이 이미 모델'이라는, 마츠
모토에 대한 평이 괜히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상투적인 표현이기
는 해도 밀가루처럼 새하얀 얼굴은, 군데군데 붉으스레한 작은 자국들이
올라와 있기는 했지만 크게 티가 나는 것은 아니라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
었다. 그런 얼굴에 대조적으로 짙은, 새까만 눈썹이 나 있다. 그러고보니
머리카락도 짙은 검정. 원래부터 저렇게 색소가 많은 편인걸까, 라고 생각
하며 오노는 살짝 집게 손가락 끝으로 눈썹을 훑어보았다. 사르륵, 하고 손
끝으로 넘어가는 눈썹이 어쩐지 기분 좋다.

 

『눈썹 안쪽이 세로로 서 있으면 못됐다고 하던데. 쥰이 너도 성격 어지간
   히 나쁜 모양이다』


괜시리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위를 향해 뻗은 눈썹을 쓰다듬는다. 손가락
이 움직일 때마다, 눈썹이 스르륵 일어났다 다시 누웠다. 손 끝에 부드럽게
느껴지는 그 눈썹이 좋다, 고 생각했다. 쭉 뻗은 오똑하고 멋진 코도, 부
끄러운 줄도 모르고 툭하면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또 마음껏 사랑해주는,
조금은 큰 편인 붉은 입술도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기다란 속눈
썹이었다. 감은 속눈썹 끝에 땀방울이 하나 맺혀있으면, 그건 정말이지 더
할 나위없이, 미칠듯이 좋았다. 뚝, 하고 그 땀방울이 자신의 얼굴에 떨어
지면 그와 동시에 오노는 두근, 하고 심장이 울리는 것을 느끼곤 했다. 대
부분 올려다 보는 입장이니까, 고개를 들면 거기에 긴 속눈썹이 드리운 그
늘이 가늘게 보이는 것이 참 예뻤다. 오늘은 모처럼 내려다보는 구도로, 어
쩐지 신선해 보이는 얼굴이다.

 


기다란 속눈썹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스륵, 하고 뱃속에서부터 장난기가
일어나버린다. 오노는 손을 뻗어 속눈썹 끝을 집어보았다. 아아, 역시 보통
보다 긴 까닭인지 별 무리도 없이 덥썩 잘 잡힌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살짝 들어올려 보았다. 정말 깊게 잠이 든 모양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쿨쿨 자는 마츠모토다. 오노는 빙긋 웃으며 손 끝에
힘을 뺐다. 사륵, 하고 속눈썹이 빠져나간다. 몇 번씩 잡고 풀고를 반복하
다가, 문득 눈꺼풀을 살짝 열어보니 그 속의 눈동자가 조금 무서워서 그만
두었다. 그 대신, 손 끝으로 속눈썹 끝을 스륵 스륵 쓰다듬어본다. 간질간
질, 손 끝에 간지러움이 일어 기분이 좋다.

 


『뭐 하는거야?』

 


눈도 뜨지 않고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오노는 화들짝 놀라 손을 떼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마츠모토가 한 쪽 눈만을 희미하게 뜨며 눈을 비빈다.

 

『아니, 그냥. 뭐가 묻은 것 같길래』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었어?』

『그런 거 아니야』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오노가 서둘러 내려오려하자, 마츠모토가 힘이 들
어간 팔로 덥썩 잡는다.


『실컷 봤어?』

『아니라니까』

 

 


『그냥. 그냥 속눈썹이 신기해서 좀 만져봤어』


툭, 내뱉으며 팔을 빼려 했으나, 역시 힘이 들어가있는 탓에 그렇게 쉽사
리 뿌리쳐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효과로, 마츠모토가 손에 힘을 더 주는
것이 느껴졌다. 애써 팔을 잡아빼려고 오노가 몸부림을 쳤지만, 어느새 휘
릭-하니, 전세는 역전이 되고 말았다. 마츠모토가 위에서 오노를 내려다보
는, 언제나와 같은 구도이다.

 

『아파-』

『흐응~』

 

그다지 놓아줄 것 같지 않던 기색의 마츠모토였지만 오노가 다시 한번 아
파, 라고 말하자 금새 손에 집어넣은 힘을 빼었다. 그렇지만 몇 번씩 무거
워, 라며 꿈틀거려도 비켜주지는 않아, 이윽고 오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잘
것 같은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조금 전, 자신이 했던 것 처럼 마츠
모토가 속눈썹을 살짝 들어올린다. 귀찮은 듯 탁, 하고 쳐냈지만 당연히 그
정도에 굴할 마츠모토 쥰이 아니다. 몇 번, 그런 작은 실랑이를 반복한 후
에야 오노는 손을 멈췄다. 그러자 마음을 놓은 듯, 길고 커다란 손이 얼굴
을 매만진다. 감은 눈꺼풀에서부터 끝이 조금 뾰족한 코, 심통이 나 살짝
내민 입술까지, 그리고 아무리 살이 빠져도 어느 정도 이상은 결코 줄지 않
는 볼에까지, 그 손의 온기가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손가락은
턱선을 슬며시 따라 가고, 주욱 가느다란 길을 만들며 목 아래를 스친다.
함께 지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렇게 목젖까지 쓰다듬어 본 것은
처음이라 마츠모토는 색다른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연인의 얼굴을 만져보
는 맹인이, 그의 작은 하나하나도 놓치지않고 각인하기 위해 그 가까이에서
숨결을 마주하고있는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마츠모토는 천천히, 아주 천천
히손 끝에 오노 사토시를 기억해 둔다. 꾹, 감은 척 하는 눈의 가는 속눈썹,
긴장하지않은 척 가느다랗게 고르고 있지만 조금 가쁜듯 한 여린 숨결, 마른
침을 살짝 넘기는 하얀 목, 약간 엇박자에 조금 빠른 템포로 오르내리는 가슴.
오노 사토시의 전부를, 손 끝에 넣는다.

 


『아, 사토시. 배 나왔다-』

 

잠시 동안 오노의 배에 볼을 대고 엎드린 채, 그의 몸을 훑던 마츠모토의 손이
배에 와서 멈칫한다. 아, 사토시. 배 나왔다-라고 말 하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
가 연인의 피부를 통해 다시 자신의 귀로 전달되어 오는 경험 역시, 마츠모토
에게 있어서는 처음이라, 뭔가 기분좋아- 라는 느낌으로 볼을 부비는데 퍽, 하
는 따끔한 아픔이 뒷통수에 머문다. 드디어 자는 척 하려던 오노가 눈을 가늘
게 뜨고서, 마츠모토를 노려보았다.

 

『왜 그래, 귀여워서 그러는데-』

 

『여기도..』

 

살짝 옷자락을 들추고 허리에 닿는 따뜻한 손길에, 오노는 잠시 움찔한다. 긴
장한 어깨가 흔들려 버려서, 마츠모토에게도 들켰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오노의 귀에, 쿡쿡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친구들한테는, 애교 많은 성격이지?』

『...』

『마치다한테랑은, 애교도 많고 하더만. 나한테도 좀 그래보지않고』

 


내가, 몇살이나 어린 너한테 애교를 떨고 있어야겠냐? 라고 말 해 주고 싶었
는데, 그 전에 가쁜 숨소리가 먼저 새어나갈 것 같아서 오노는 입을 열 수가 없
었다. 그런 오노의 얼굴을 즐거운 듯 마츠모토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기에 더
더욱 입을 열 수가 없다. 자신의 표정 하나 하나가 어떻게 변하는지, 반응 하나
하나를 어떻게 보이는지 면밀히 살피며 즐거워 하는 눈이다.


표정 하나 하나가, 반응 하나 하나가 그의 눈길에 잡힌다. 손으로는 멈추지 않
고 셔츠 아래 속살을 매만지면서, 눈으로는 온 신경을 어루만진다. 위험해, 라
고 생각하는 순간 그 눈은 장난스러움을 가득 담으며 새까맣게 변했다. 씨익,
웃는 입술 사이로 붉은 혀가 보인다. 예상치 못 한 일도 아닌데, 마츠모토의 혀
가 배 위에 닿은 순간 오노는 저도 모르게 읏, 하는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리에
손가락을 깊숙히 묻었다. 어쩌면 긴장한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냈다, 라는
표정으로 마츠모토가 고개를 들어 씩 웃는다. 짐짓 화가 난 듯 입술을 깨무는
오노의 얼굴을, 악의는 담기지 않은 다정스런 눈으로 훑는다. 그 눈에 한순간
오노는 철렁,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살아있는 한, 이 심장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심장을 손에 쥐어 두
근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와는 전혀 다른, 천진한 아이와 같은 눈빛으로 마
츠모토는 오노의 곳곳을 눈으로 만지고, 손으로 만지며, 또한 동시에 혀로 핥
는다. 결국 이길 수 없음에, 오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기쁜 듯 그의 몸
에 고개를 푹 파묻는 모습에, 지금 자신의 몸무게가 어떤지는 생각도 하지 않
고 좋아라 주인에게 달려드는 커다란 응석받이 개가 생각났다. 조금씩, 조금
씩, 품 안에서 꿈틀거리는 머리에 의해 셔츠 자락이 올라간다. 맨살에 닿는 검
은 머리카락의 느낌이 조금 간지러워 몸을 조금 비튼다. 급기야, 마츠모토의
손이 바지 버클에 닿아, 그제서야 조금 정신을 차린 오노가 작게 입을 열었다.

 


『나, 내일 회사 가는데...?』

『괜찮잖아. 조금만』

『음..』

『괜찮지?』

 

괜찮긴 뭐가 괜찮아, 라며 몸을 빼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고개가 의지를 배신하
고 끄덕여지고 만다. 더이상은, 오노 자신이 여기에서 멈출 수 없음을 경험상
이미 알고 있다. 익숙한 손길에 반사적으로 일어나고야 마는 언제나의 반응.
익숙해진다는 건 어쩜 이다지도 무서운 것인지.

 

그러나, 싫지는 않다. 이마에서부터 땀이 흘러내려, 눈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속눈썹에 맺히는 마츠모토 쥰의, 아아, 좋아하는 얼굴이다. 자신의 표정과 반
응, 그 작은 변화 하나에 조차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분이 좌우되는 사람이 있
다-라고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행복한 일이다. 오노는, 손을 내밀어 곧 떨어
질 듯이 속눈썹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마츠모토의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그는 빙긋 웃으며, 팔을 뻗어 오노의 머리를 다정스레 붙든다. 입술은
채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그 숨결을 먼저 느낀 오노의 입술이 습관처럼 저절로
벌어졌다.

 

 

 


끝 없이 탐닉 하고 마는 어떤 열락(悅樂).

 

 

 

 


이 기분 좋음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耽溺 end ++++++++++++++++++++++++++

 

 









이어지는 내용들은 아니었고, 그냥 시리즈로 끄적대던 간단한 글인 동거 중에서.
이제서야 고백하는 거지만 '탐닉'이 젤 좋았고 더 야하게 못 써서 아쉬웠었다()
특히나 매번 집착하고 후회하는 '배꼽'씬.....................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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